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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9월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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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현장에서 생각하는 교회의 거룩성과 공공성

인기 기사

1. 지역교회 안에서 바라본 거룩성과 공공성

코로나에게 고마운 것 중 하나는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져준 것이다. 고통스럽고 긴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면서 묻고 또 물었다. 교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교회 목회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론했지만 뾰족한 소득도 대안도 찾지 못했다. 그저 마음만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서 목회자들과 한국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논의하다 번개처럼 스쳐가는 한 문장이 있었다. ‘시대의 아픔에 응답하는 교회’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계속 마음에 남았다. 교회가 무엇이지에 대한 신학적 접근도 하고, 교회의 본질에 대한 성경적 고찰도 했지만 뿌연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는데, 이 말에서 무언가 선명한 것이 손에 잡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문장은 2022년 우리교회의 표어가 되었다. 이 글은 목회현장에서 교회의 거룩성과 공공성에 대해 목회자가 예배와 설교, 사역을 통해 질문하고 대답을 찾아가는 어설픈 시도에 대한 흔적이다.

2. 그럼에도 여전히 교회는 거룩한가?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 7:4,개역개정)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예배하러 오는 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외쳤다. 선지자 말라기는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성전 문을 닫아서, 내 제단에 쓸데없이 불을 지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가 너희 손에 있는 제물은 어떤 것도 받지 않겠다.”(말 1:10,우리말성경) 선지자 이사야도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선포했다.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사 1:13,새번역)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채찍을 휘둘러서 짐승과 상인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상을 엎으셨다. 유대인이라면 거룩한 성전에서 아무도 감히 할 수 없는 파격적이고 과격한 행동을 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무너뜨려 보시오. 그러면 내가 3일 안에 그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소.”(요 2:19,새한글성경) 요한계시록의 기록자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이렇게 전했다. “너는 말하기를, 네가 부유하며 돈을 많이 벌었고 모자라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너는 알지 못하고 있구나. 너는 비참한 처지에 있다. 불쌍하고, 가난하며, 눈이 멀었고, 벌거벗었다.”(계 3:17,새한글성경)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야고보서의 기록자는 경건을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경건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세상의 악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순수하고 깨끗한 신앙을 보십니다.”(약 1:27,쉬운성경)

한국교회의 대단한 착각은 십자가와 교회명패를 거는 순간부터 무소불위의 거룩성을 교회가 소유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회를 향한 비판을 마치 하나님을 향한 비판처럼 여기면서 교회=성전이라는 신성불가침의 논리를 펼친다. 그러나 구약의 선지자들과 예수님, 사도들은 교회의 치부를 드러내고, 거짓을 비판하며, 위선을 고발했다. 개혁교회는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하기 위해 교권에 항거(protestatio)했다.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뮤지컬 노래가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 등장하는 대성당들의 시대라는 곡이다. [아름다운 도시 파리, 전능한 신의 시대, 때는 1482년,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 우린 무명의 예술가, 제각각의 작품으로, 이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훗날의 당신에게,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 왔어,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 하늘 끝에 닿고 싶은 인간은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성문 앞을 메운 이교도들의 무리, 그들을 성안으로 들게 하라, 세상의 끝은 이미 예정되어 있지, 그건 이천년이라고.] 노트르담 대성당의 위용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던 강렬한 기억이 있다.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대변되는 교회건축물에서 교회의 힘과 부를 느낄 수 있었다. 2019년 뉴스화면 속에서 불타는 노트르담성당을 보면서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막 13:2,개역개정) 어디 건물뿐이겠는가? 사람이 만든 전통과 규례와 제도도 결국은 다 사라지고 만다.

교회의 거룩성에 대해 던지는 2가지 질문은 이것이다.
1. 무엇이 교회를 거룩하게 하는가? (교회의 거룩성은 획득되는 것인가? 부여되는 것인가?)
2. 무엇이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하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오늘 여러분의 의견을 잘 경청하고 싶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은 3가지다. 첫째, 목회자의 침체이다. 나는 열망했다. 교권이 높아지기를, 교회가 커지기를, 재정이 많아지기를, 영향력이 확대되기를. 그러나 그런 욕망은 가슴 속에만 숨긴 채 대외적으로는 교양?있게 말할 줄을 알았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실현되기를 바란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설교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올 때마다 선포한 말씀과 내 삶의 괴리를 느꼈다. 물론 위법을 하거나 비도덕적인 일로 비난을 받을만한 일들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간순간 진심으로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나 자신이 목사다워지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의 탐욕과 신앙고백 사이에서 자주 탐욕을 선택했고, 이상과 현실의 싸움에서 때때로 현실 앞에 패배했다. 목회자가 되면서 돈과 명예와 권력을 포기한다고 다짐했지만, 유혹은 지속적이고 모호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애써 변명을 하자면 뚜렷하게 잘못된 것은 최선을 다해 거부했다. 그러나 선명하지 않은 상황들이 더 많았고 결정을 한 후에는 후회가 뒤따랐다. 깨어있지 못했고 기도하지 않았고 성공과 안정에 마음을 뺏겼다. 교회의 거룩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목회자의 영적 해이와 침체에 대한 방관이 될 수 있다.

둘째, 직분에 대한 명예심이다. 총회장, 노회장 선거만 과열된 것이 아니다. 교회직원선거에 성도들이 지나치게 민감하다. 직분자를 선출하는 선거결과가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섬겨온 교회생활에 대한 평가라고 여긴다. 장로가 되면 당회원으로서 막강한 권한과 결정력을 가지게 된다고 여겨 태도가 달라진다. 직분은 계급으로 인식된다. 어느 사회학자가 지적한대로 한국사회에서 계급은 사라졌지만 계급의식은 더욱 강화되었다는데 교회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교회의 의사결정구조는 특정 연령과 성별에 편중되어 있다. 누가 크냐는 제자들의 논쟁은 2천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한국교회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는 길에서 십자가는 보이지 않고 힘겨루기만 난무한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고난의 예고는 들리지 않고 겟세마네 기도에는 졸음만 쏟아진다. 그러다 십자가가 다가오면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셋째, 성경적 세계관의 부재이다. 한국교회는 성경공부에 대단한 열정을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 성경지식을 늘리는 공부에 치중되어 있다. 말씀을 통해 세계를 보는 관점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기 보다는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이해에 만족한다. 학교에서 공부하듯이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다보니 선택의 순간 결정을 좌우할 삶의 가치관으로 뿌리내리지 못한다. 오히려 삶을 지배하는 가치관은 부모와 친구, 사회관계에서 형성되고 성경지식과는 괴리되어 실제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법을 자행하는 집사, 이중장부로 탈세하고 분식회계로 부풀리는 장로, 인맥과 편법으로 혜택을 누리는 권사, 로비와 청탁으로 힘을 행사하는 목사까지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양심의 경고등은 다 꺼져버린 상태다.

어릴 때 교회는 거룩했고, 청년이 되었을 때 교회는 답답했고, 신학생일 때 교회는 제도적이었고, 목회자가 되었을 때 교회는 위선적이었고, 당회장이 되었을 때 교회는 절망적이었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교회는 언제나 은혜 가운데 있었고 교회는 거룩했다. 고멜을 되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가 이 땅의 소망인 이유이며 거룩성의 토대이다.

3. 교회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시도들

국민정서와 괴리되어 있는 한국개신교, 시대의 흐름과 역행하는 교회결정들,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교회지도자들의 언행은 어쩌면 기복주의와 무속적 신앙행태, 개교회주의의 뿌리에서 자라난 열매들일 것이다. 역사의 주관자아신 하나님을 믿는 교회가 몰역사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역설이다. 세상의 아픔에 무감각한 교회, 작은 자들의 하소연에 공감하지 못하는 교회, 세상을 세속으로 규정하고 담을 쌓아버린 교회는 세상과 다른 관점으로 보고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세계에 속한 것을 자랑처럼 여겼다. 그 결과 이제 한국사회는 한국교회에 아무런 관심도 기대도 하지 않는다.

교회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첫 걸음은 성도들이 먼저 공교회의식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공교회의 구성원으로서 개교회가 지역사회에서 공적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교회 목회팀은 주일예배에 주목했다. 가장 많은 성도들이 참여하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위임목사의 설교주제를 시대의 아픔에 맞췄다. 다음은 올해 설교제목과 주제이다.

 날짜성경본문제목주제
1마 11:15-17응답하라 2022 !시대의 아픔에 응답
21. 9.마 5:21-22자신과 남을 살인하지 말라자살실태와 예방 참여
31.16.레 23:22가난한 자에 대한 교회의 책무빈부심화 해소 방안
41.23출 23:9나그네의 안식처가 되는 교회이주민 사역 모색
52. 6요 8:31-36중독, 속박의 굴레중독자들에 대한 대처
62.15전 4:9-12소그룹, 신앙의 세겹줄성도들의 나눔과 교제
73. 6창 1:26-31보시기에 좋으신가요?창조질서 보전
83.13마 5:9갈등의 땅을 평화의 땅으로분쟁해결을 위한 책임

이후 계속적으로 다룰 주제들은 부부갈등, 불륜과 이혼, 저출산, 노후빈곤, 신앙적 회의, 우울증과 무력감, 자녀양육, 인간관계, 성소수자, 부동산, 성경적 유산 등이다. 설교 후, 응답하는 모임을 만들어 성도들이 예배 후 자발적으로 모여서 소그룹을 이루고 각 주제별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10-40명 정도가 모여서 소그룹을 이루어 지역사회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공교회 의식을 가지기 위해 초교파적 연합모임에 교회장소를 개방하고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지역사회 현안에 대해 교회가 공동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성도들에게 알리고 있다. 예배인도자들의 기원과 합심기도제목, 봉헌기도내용에 공교회에 대한 고백이 계속 담기도록 노력하고 있다. 대표기도 순서자들의 기도 속에서 자연스럽게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고 연합을 소중히 여기는 기도내용들이 고백되고 있다. 시민회관 건축으로 지역단체들이 총회장소를 구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교회본당을 개방하였더니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휴게업종사자 교육 및 복지사 교육, 신협총회, 시각장애인 총회 등 다양한 모임장소로 활용되고 행사가 있을 때는 야외에 흡연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해양쓰레기 수거활동을 부활절 전후로 시행하면서 가족단위, 소그룹 단위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제주교회와 도민들 사이에 가장 큰 걸림돌은 4.3이다. 4.3 유족회는 개신교를 가해자로 보는 시선이 많고 교회 역시 4.3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금기시해왔다. 통합교단에서 4.3 70주년 기념예배를 드릴 수 없어 초교파적인 교단협의회를 통해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4.3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교회가 감당해야할 역할과 책임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개신교는 대립적 주제(동성애, 정치세력화)에서 벗어나 통합적 주제(생태, 치유, 통일)를 한국사회에 제시하고 공감을 얻으면서 실추된 신뢰를 회복해가야 할 것이다. 교회가 이 마을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시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대답하도록 하는 것이 개교회의 과제가 아닐까?

교회의 공공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주제는 2가지이다.

1. 교회가 생각하는 공공성과 사회가 생각하는 공공성의 차이는 무엇일까?

2.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공공성은 때로 충돌하는데 해법은 무엇인가?

4. 절망이 준 선물

소설가 황석영씨는 그의 소설 [손님]에서 역병을 손님으로 묘사한다. 손님처럼 예기치 않게 찾아오지만 주인이 아니기에 잠시 머물다 떠나기를 바라는 소망, 그리고 머무는 동안 융숭한 대접을 하면 아무리 모질고 험악한 불청객이라도 떠날 때는 뜻밖의 선물을 남기고 갈 것이라는 기대로 그렇게 불렀는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이토록 우리 곁을 쉽게 떠나지 않으려는 것은 아직도 할 말이 남아서일 것이다. 하나님이 이 손님을 우리에게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고통을 통해 교회가 거룩성을 회복하고 공공성을 갖추어간다면 손님으로 찾아온 코로나는 그 본연의 임무를 마치고 아름다운 선물을 남기고 떠날 것이다. 우리가 오늘 모인 것이 그 선물을 받기 위한 준비의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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