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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과 왕의 세습? 무엇을 세습하는지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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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세습금지법이 제정된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도 세습한 교회가 있다는 것은 더 슬픈 일입니다. “거룩한 공(公)교회를 믿는다”는 사도신경의 신앙고백을 드릴 때 마음 한구석이 개운하지 못합니다. 세습은 사(私)교회나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주님의 몸인 거룩한 신앙공동체가 부동산이 된 것 같아 서글퍼집니다. 세습한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공(公)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교회를 세습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이들은 구약성경을 근거로 내세우기도 하는가 봅니다. 제사장과 왕도 세습했다는 것이지요. 언뜻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그럴듯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교회의 담임목사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아니고 유다의 왕도 아니니까요. 아론의 아들도 아니고 다윗과 피가 섞이지도 않았습니다. 구약에서 왕과 제사장이 세습했다고 하여 오늘날 이스라엘이 대통령이나 총리직을 세습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 어떤 일이 기록되었다고 해서 지금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났으니 그리스도인은 모두 타향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할례도 그렇습니다. 구약에서 할례는 하늘 같은 법이었지만, 교회는 할례를 신앙의 예식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초기 교회가 구원의 조건에서 할례를 물리쳤기 때문입니다(행15장). 교회 세습의 근거로 구약의 왕과 제사장을 끌어오는 것은 억지입니다. 스스로 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일입니다.

그래도 굳이 제사장과 왕의 세습을 말하려고 한다면, 무엇을 세습했는지 그 정신을 새겨야 하겠지요. 지금은 그때처럼 세습할 수는 없지만, 직분에 담긴 교훈을 찾는 것은 어느 시대나 해야 할 일이니까요.

레위기 8장에 아론과 그 아들들의 제사장 위임식이 나옵니다. 일주일 동안 엄숙하게 진행된 예식이었습니다. 순서마다 뜻이 있지만, 그 가운데 눈여겨볼 장면 한 가지를 짚고 싶습니다. 바로 속죄제입니다. 제사장이 되려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려야 했습니다(레8:14). 그런데 이것은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대제사장)이 범죄했을 때 드리던 제물입니다(레4:3). 제물 중에서 가장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온 회중”이 범죄했을 때 드려야 하는 제물도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입니다(레4:13-14). 속죄제의 수송아지!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 제물을 바치게 하셨습니다.

제사장이 되려는 이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의 범죄가 “이스라엘 온 회중”의 범죄와 맞먹을 만큼 무겁다는 것을 제사장이 되는 첫 순간부터 똑똑히 기억해야 했습니다. 한 사람 제사장의 죄는 온 이스라엘 백성의 죄만큼이나 무거웠습니다. 백성의 속죄를 돕는 제사장은 이런 자세로 먼저 자기 자신을 철저히 돌아봐야 했습니다.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 제사장 직분의 시작이었습니다.

아, 나 한 사람의 죄가 공동체 전체를 망칠 수도 있구나!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이런 뜻을 마음에 새기며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제사장 위임식은 매우 두려운 예식이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지요. 이렇게 해서 제사장이 되는 아버지와 아들들이 부와 권력을 세습하겠다는 세속의 욕망을 꿈꿀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탐욕이 틈탈 자리가 없습니다. 제사장이 세습직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이런 정신을 세습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부와 권력을 물려받는 오늘날 중대형 교회의 담임목사직 세습의 근거를 이처럼 두려운 말씀에서 찾으려는 것은 꽤나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더 짚고 싶습니다. 제사장이 되기 위해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바친다고 했지요. 그 제물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쓰였습니다. 그것은 “제단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제단의 네 귀퉁이 뿔에 발라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그 피는 제단 밑에 쏟아 제단을 속하여 거룩하게 하고”(레8:15)

제단을 깨끗하게, 제단을 거룩하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들이 안수한 수송아지의 피가 제단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는 데에 쓰이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제사장 위임식의 속죄제에서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제사법에서 ‘안수’가 죄와 생명의 옮김을 의미한다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제사장 직분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분명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제사장의 죄는 성소를 더럽히는 것이다!

제사장은 제단의 거룩성을 생명처럼 지키는 사람이다!

공동체의 생명이 제단의 거룩함에 달려 있다!

제사장 직분의 바탕에는 이처럼 크고 두려운 정신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에서 세습을 끌어내 부와 권력의 대물림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대하는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말씀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직 세습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봉사와 헌신에서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세습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억지를 쓰지 않으셨네,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시는 것에.
오히려 자신을 비우셔서,
종의 모습을 취하셨네.
사람의 모양을 띠고 태어나시니,
생김새로 볼 때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셨네.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빌2:6-8 새한글성경)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세습입니다.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지만 하나님과 동등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2천년 동안 교회가 그토록 소중히 여겨온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은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나사렛 예수는 온 인류를 구원하는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아름다운 세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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