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C
Korea
금요일, 10월 4, 2024

제6회 신앙고백모임 포럼 개최

“한국교회 미래를 예측해 본다!” 한국교회 갱신과 회복을 위한...

제5회 신앙고백모임 포럼 개최

“근본주의의 현상과 교리” 한국 사회 안에서 보수화된 기독교가...

청소년 여름수련회 ACTS CAMP

2022년 여름, WMC가 다음세대와 함께 걷습니다.제8회 ACTS...

통합교단 신학자들, ‘교회 세습’에 대한 입장문 발표

인기 기사

교회세습에 관한 신학적 성찰문 전문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는 제99회 총회에서 ‘위임 혹은 담임목사 청빙 제한규정’(헌법 정치 제28조 제6항)을 결의하였습니다. 이러한 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교회세습은 보란 듯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계 내부에서 일어나는 탄식은 물론 교회 밖에서도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일명 이 교회세습 방지법을 둘러싸고 몇 년 동안 계속되는 갑론을박으로 인해 통합 교단은 혼돈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제107회 총회에서도 이 문제는 중요한 논란거리가 될 것이 자명해 보입니다. 이에 신학을 전공한 통합 교단의 뜻있는 신학자들이 이 문제에 관해 나눈 신학적 성찰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밝힙니다.

1.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 이전의 율법이 아니라 당신께서 이루신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시면서 새롭게 시작된 은혜의 시대엔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 제사장이 되는 율법 규정이 더 이상 규범적인 성격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에 의하면, 당신께서 대제사장이 되어 매년 행하던 제사장의 희생제사를 단 한 번으로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허물어진 이후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유대교에서조차 이 제사장 제도는 규범적인 성격을 잃게 됩니다. 또한 베드로전서에 의하면, 신약성서 시대의 교회는 제사장직을 특정 가문에서만 대물림되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제사장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율법의 규정을 들먹이며 목회지 대물림의 정당성을 주장한다면,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루신 대제사장직을 부정하며 ‘그리스도-교’를 고대의 유대교로 환원하려는 반복음적인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2. 일명 ‘교회세습 방지법’은 명확한 성서적 전거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교회적이고 사회적인 상황 때문에 만들어진 법입니다

신약성서 시대 이후 교회는 ‘부름’과 ‘안수’라는 틀을 통해 목회자를 세웠습니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목회자가 되는 것을 금하거나, 아버지 목회지에 아들이 청빙 되는 것을 금하는 법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적이며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세 초기에 ‘내 교회’가 등장하면서 목회지 대물림은 초유의 관심으로 떠오릅니다. 
‘내 교회’란 교회가 공적으로 세운 교회가 아니라 영주나 귀족, 또는 주교가 자신의 영토에 사적으로 세운 교회를 말합니다. 이런 ‘내 교회’는 자식에게 상속할 수도, 타인에게 매매할 수도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법적 환경이 교회적이며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설립자가 교회로 들어오는 기부금이나 헌금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칼 대제가 모든 신민은 십일조를 의무로 내야 한다는 황제령을 내리고, 그 결과 교회로 들어오는 헌금이 많아지면서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교회 설립이 확실한 재산 증식의 한 방편이 되자 ‘내 교회’가 우후죽순으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공교회는 교회 재산의 사유화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교회법에 의하면, 교회 재산은 해당 교회의 사제나 설립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주교에게 있었습니다. 공교회는 이를 근거로 하여 ‘내 교회’ 설립자에게 상속권은 인정하였지만, 재산권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편법과 불법으로 인해 교회의 재산까지 자신의 소유로 삼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내 교회’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교회재산의 사유화가 공교회로도 번져나갔습니다. 당시 사제의 임기는 죽을 때까지였습니다. 그 때문에 한 교회를 30년, 40년, 심지어는 50년 이상이나 섬기는 일이 가능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사역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교회를 자신의 소유로 여길 수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의 관점에서는 이 교회를 ‘아버지 교회’로 여길 수 있는 위험이 다분히 있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를 물려주고 물려받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습니다. ‘내 교회’는 물론 공교회의 재산까지 사유화하는 일이 일어나자 교회는 이를 막기 위해 교회세습 방지법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교회세습을 해서는 안 된다는 성서적 전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적이며 사회적인 상황이 목회지 대물림 방지법을 만들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한 것입니다. 
통합 교단의 제99회 총회에서 만든 소위 교회세습 방지법도 이와 같은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신뢰성이 떨어지며, 급기야는 손가락질까지 받는 상황에 이른 여러 요인 중 대형교회의 세습 문제도 들어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성찰과 함께 공적 교회가 사유화와 비슷한 성격을 갖는 세습을 감행하는 것에 대해 신학적인 고민도 있었습니다. 공교회성이 훼손되는 것에 대한 교회론적인 성찰입니다. 이런 교회적이고 신학적이며, 사회적인 상황이 일명 교회세습 방지법이 발의되고 결정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3. 중세의 세습 금지법은 매우 엄격했습니다

공교회의 사유화를 막기 위해 중세 교회가 취한 세습 금지법은 아버지가 목회했던 교회에서 아들이 사역하는 모든 종류의 대물림을 금지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주임사제로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제나 차부제로 사역했던 교회로 아들이 부임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용어로 번역하면, 아버지가 담임목사는 물론 부교역자로 사역했던 교회로 아들이 청빙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자가 직접적인 대물림을 방지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성직매매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사역했던 교회에 남아 있는 인맥을 통해 아들을 그 교회의 사제로 가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세 시대에 사제의 청빙은 전임 사제가 죽은 뒤나, 다른 교회로 임지를 옮긴 뒤에 이루어지기에 기본적으로 ‘은퇴하는’이나 ‘은퇴한’이라는 구별이 없었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죽은 뒤’나 ‘옮긴 뒤’이기에 ‘은퇴한’이 더 바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중세의 세습 금지법을 잘 알고 있었다면, 세습 논쟁에서 ‘은퇴하는’이나 ‘은퇴한’이라는 말을 두고 벌인 소모적인 논쟁은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중세의 교회법에 의하면 사제의 청빙 권한은 주교에게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말로 표현하면 노회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역 주교는 각 교회의 사제들에 관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알면서도 교회의 직접적인 대물림을 인정하는 주교도 있었습니다. 주교의 이런 눈감아주기가 발각되면 생활기반 자체를 박탈하는 성직록 몰수라는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교회세습을 허락하는 노회의 모든 관계자가 일체의 사례비를 받을 수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속이고 아버지 교회를 물려받는 경우엔 아들 사제에게 면직이라는 벌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엄격한 세습 금지법에도 불구하고 세습하려는 자들의 불법과 편법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습니다.

4. 중세에 사제의 독신제가 교회세습을 막기 위한 일환으로 법제화되었다는 것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원래 사제의 독신제는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장의 정결법과 사도 바울의 권면에 근거해 초대 교회에서 거듭 주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세가 시작하면서 독신제는 더욱 강화되는데 그 배경에는 교회세습을 막고자 하는 절박감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있기 때문에 교회를 물려주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기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인 대책을 사제의 결혼 및 성관계 금지와 이를 통한 아들의 출산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지역 종교회의(노회)와 공의회(총회)를 통해 독신제를 강화하지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제의 아들들의 법적 지위를 상속권 자체를 가지는 못하는 ‘교회의 종’이나, ‘불법으로 태어난 자’ 등으로 규정합니다. 이런 법적 권리 자체의 박탈에도 불구하고 편법과 불법을 통해 목회지 대물림은 계속됩니다. 이러한 편법과 불법을 차단하기 위해 공교회가 내놓은 강력한 대안은 사제의 아들이 사제가 되는 길을 아예 막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짓과 다른 한편으로는 합법적인 가면을 쓴 꼼수의 등장으로 오래 가지 못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속인다든지, 아들 사제가 전임 사제가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속이고 같은 교회로 부임하는 경우가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법을 잠재우는 교황의 면제 특권을 얻어 교회세습을 적나라하게 강행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중세 교회는 결국 공교회를 사유화하는 교회세습을 완벽히 차단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를 막기 위해 강력한 방안으로 내놓은 독신제도 관철하지 못했습니다.

5. 교회세습은 성직매매의 일환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배경에 교황의 면제 특권이 있습니다. 교회법이 정하는 나이가 되지 못했음에도 어린 알브레히트는 막데부르크의 대주교가 됩니다. 그의 법 파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주교는 한 지역의 주교만 되어야 한다는 교회법을 또다시 어기고 마인츠의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법을 어기며 두 곳의 대주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교회법을 잠재우는 교황의 면제 특권이 있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알브레히트는 이 대주교 자리를 교황에게 거액의 돈을 주고 샀습니다. 그리고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도록 면죄부 판매권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루터가 교회개혁의 목소리를 내게 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교회세습과 관련해서도 일어났습니다. 중세의 교회법에 의하면 교황의 면제 특권은 교회법 위에 있습니다. 이 면제 특권은 원래 개개의 사안이나 특정 지역과 시점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즉 한시적이고 예외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황의 면제 특권은 성직매매의 온상으로 변질하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교황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친분 때문에, 또는 무엇인가를 받고 아버지 목사에서 아들 목사로 곧바로 이어지는 대물림을 허락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교회세습을 금지하는 교회법을 가지고 교황의 허가를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교황의 면제 특권은 모든 교회법 조문을 잠재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으로 교황을 매수하여 아버지가 목회했던 교회를 넘겨받는 일들이 일어났으며, 결국 교회세습은 성직매매의 일환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세습과 관련하여 무언가 ‘거래’되거나 ‘교환’된다면 그것은 성직매매에 해당합니다. 

6. 교회세습을 포함해 성직매매는 교황이 누리던 절대 권력의 폐해입니다

중세에 교회세습이 가능했던 것은 봉건제도의 영향 때문입니다. 봉건적 사고가 교회에도 스며들어 사제가 무의식적으로 영적 군주처럼 행동하고, 교회의 신자들을 자신의 영적 신민이나 종으로 간주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자 루터가 비판적으로 사용하는 ‘목사-주님’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실상입니다. 이 말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군주와 같은 권위를 가지는 목사라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리에 목사가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목사-주님’을 태어나게 한 배경이 교황을 머리로 하는 교회 제도였습니다. 
교회세습과 성직매매가 판을 치며 교회를 어지럽히던 시기가 교황들이 자신의 절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영적인 권위는 말할 것도 없고 세속 권력까지 다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을 펼치던 시기와 겹친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은 교회법에 의해 제한받지 않고 교회법 위에 있으며, 자기 말이 곧 법이라 여기는 교황이 파면과 지옥행이라는 협박으로 교회는 물론 세상의 군주까지 지배하게 되니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고딕 양식으로 대변되는 교황의 바벨탑은 불법을 저지른 자들이 죄를 세탁하기 위해 공공연하게 내미는 돈으로 더욱 높이 올라갔고, 교황청은 돈맛에 취한 자들이 몰려드는 도적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교황에게 부여된 이러한 절대 권력이 돈으로 쌓여졌기 때문에 교회 대물림을 하려는 자들의 기부 행렬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돈으로 주고 사는 종잇조각 하나가 세습을 금하는 교회법을 잠재울 뿐만 아니라 합법화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늘을 찌를 듯한 교황의 권력은 온갖 성직매매를 정당화시켜주는 온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대 권력은 상식을 지키는 이들이 토해내는 양심의 소리를 비껴갈 수 없었습니다. 14세기엔 위클리프가, 15세기엔 얀 후스가, 그리고 16세기엔 루터가 면제 특권을 남발하며 돈 좌에 앉아 있는 교황을 향해 ‘적그리스도’라 비판하며 교회의 바벨론 유수를 끝내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봉건적 사고방식이 지배하던 시기에 공교회를 피폐화시킨 악성 종양인 교회세습은 교황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이 낳은 부산물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세습이 일어난다면, 아마도 그것은 봉건적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교회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전망해 봅니다. 아버지 목사가 무소 부재의 권력을 가진 ‘목사-주님’으로 등극하고 신자들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교회 말입니다. ‘목사-주님’이 왼편과 오른편을 가르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음성을 듣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어도 되는 교회 말입니다. 봉건제도의 영향으로 사제가 영적 군주로 등극하고 봉건시기의 교회세습이 ‘내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것처럼, 오늘날에도 아버지 목사가 교회를 개척하고 ‘목사-주님’으로 등극한 교회에서 세습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교회세습을 감행하는 교회가 봉건시대의 중세 교회와 닮아도 너무 닮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7. 개신교가 넘어섰다고 간주하는 중세 교회는 공교회의 사유화를 막기 위해 교회세습 세력과 1,000년이 넘도록 싸웠습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중세 교회는 세습과 이것을 관철하기 위해 강화한 사제의 독신제를 관철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불법과 편법으로 교회 대물림을 계속하는 세력에게 사실 백기를 들 만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중세의 지역 종교회의와 공의회는 1,000년이 넘도록 되풀이하여 교회세습은 안 된다고 결정하고 선포하였습니다. 설혹 교황이 면제 특권을 발동하여 개별적으로 세습을 인정하는 일이 있더라도 지역 종교회의와 공의회는 흔들리지 않고 교회세습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공교회의 사유화를 막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였습니다. 공교회에 대한 이런 열심은 우리가 배워도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 교단의 노회와 총회도 세습은 안 된다는 원칙을 되뇌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세습을 드러내놓고, 또는 은근슬쩍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노회와 총회까지 특정 개인이나, 교회나, 세력의 사유화가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8. 교황의 면제 특권과 제104회 총회 석상에 나온 ‘명성교회 수습전권위원회’가 제시한 제7항

중세에는 특정한 교회세습을 교황이 허락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교회법에 저촉하는 것을 교황이 면제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면제 특권은 그 사안에 대한 교회법이 면제권을 받은 해당 개인이나 교회에 효력을 발하는 것을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법 위의 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하에서 명성교회 수습전권위원회가 제104회 총회에서 내놓은 수습안을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이 수습안은 법을 잠재하고 결정한 것이므로, 누구든지 총회헌법 등 교회법과 국가법에 의거하여 고소, 고발, 소제기, 기소 제기 등 일절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다”는 일곱 번째 항목이 그렇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총회가 구성한 수습전권위원회가 내놓은 수습안이 헌법을 잠재울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2012년 9월 20일에 개정된 헌법시행규정 제1장 제3조 2항에 법을 적용하는 위계질서가 나와 있습니다. 적용순서는 “총회헌법, 헌법시행규정, 총회규칙, 총회결의, 노회규칙(정관, 헌장, 규정 등 명칭을 불문한다.)과 산하기관의 정관, 당회규칙(정관, 규정 등 명칭을 불문한다.) 등의 순”입니다. 그리고 “상위법규에 위배되면 무효이므로 개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명성교회 수습전권위원회가 내놓은 수습안 자체는 헌법이나 헌법시행규정을 잠재울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무효로 처리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들먹이며 교회세습을 정당화하는 것은 명성교회 수습전권위원회에 교황의 지위를 부여하고, 그들이 내놓은 수습안에 교황의 면제 특권이 누리던 초헌법적 권위를 부여하려는 오만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습전권위원회가 총회에 제출한 수습안이 총회석상에서 가결되었을 때 그 법적 효력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총회 결의가 교황의 면제 특권처럼 교회법을 잠재울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헌법시행규정 제4장 부칙 제7조를 세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헌법이나 이 규정의 시행유보, 효력정지 등은 헌법과 이 규정에 명시된 절차에 의한 조문의 신설 없이는 총회의 결의나 법원의 판결, 명령으로도 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명성교회 전권수습위원회가 내놓은 수습안이 제104회 총회에서 결의되었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효력을 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습안이 헌법이나 헌법시행규정을 잠재울 수 있다는 새로운 조문을 신설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총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헌법 및 헌법시행규정을 수정하는 안이 논의되지도, 제출되지도, 결의되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단지 총회 결의만으로는 명성교회 수습전권위원회가 내놓은 수습안은 법적 효력을 가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황의 면제 특권이 모든 교회법을 잠재우고 즉각적인 효력을 발휘하던 중세의 교황제도 아래 있지 않습니다.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

Random News

최신기사